지난 글에서는 사인파/정현파에 대해 정리했다.
진폭 \( A \), 각주파수 \( \omega \), 위상 \( \phi \) 세 숫자로 모든 사인파가 결정된다는 게 핵심이었다.
[수학] 삼각함수와 정현파 기초 - 사인파의 해부학
지난 글에서는 2계 미분방정식과 특성방정식을 다뤘다.판별식이 음수일 때, 해가 \( e^{\alpha t}(C_1 \cos\beta t + C_2 \sin\beta t) \) 꼴로 풀린다는 것까지 봤다. [수학] 2계 미분방정식과 특성방정식 - 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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근데 솔직히 사인파를 직접 다루는 거? 귀찮고 짜증난다.
미분하면 \( \cos \)으로 바뀌고, 두 번 미분하면 \( -\sin \)이 되고,
사인 두 개 더하면 또 다른 사인파가 나오긴 하는데 합치는 공식부터 외워야 한다.
같은 주파수의 사인파 세 개만 더해보면, 그때부터 손에서 미끄러진다.
그래서 19세기 엔지니어 한 명(Charles Proteus Steinmetz)이 분노에 차서 만든 도구가 바로 페이저(Phasor) 다.
페이저 한 번 익히면, AC 회로 해석은 진짜 간단해진다.
미분이 곱셈으로 바뀐다.
[ 세 줄 요약 ]
페이저는 사인파를 "복소평면 위의 회전하는 화살표"로 바꿔치기하는 도구다.
진폭과 위상만 가진 복소수 하나로 사인파를 표현하면, 미분방정식이 단순한 곱셈·덧셈 문제로 변한다.
AC 회로 해석의 모든 출발점이다.
페이저가 왜 필요한가 — 사인파 직접 푸는 게 너무 빡세다
직렬 RLC 회로에 사인파 전압 \( v(t) = V_m \cos(\omega t) \)를 걸었다고 치자.
KVL을 적용하면 이런 미분방정식이 나온다.
\( \displaystyle \begin{aligned} &L \frac{di}{dt} + R\, i + \frac{1}{C}\!\int i\, dt \\[4pt] &\qquad\qquad = V_m \cos(\omega t) \end{aligned} \)
(식 1 - RLC 회로의 KVL 방정식)
미분도 있고, 적분도 있고, 우변엔 사인파까지.
이걸 직접 풀려면 지난 포스팅과 같이 2계 미분방정식 풀이를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.
[수학] 2계 미분방정식과 특성방정식 - 근의 공식 이용
지난 글에서는 1계 미분방정식 풀이법을 정리했다.변수분리로 되는 놈은 변수분리, 안 되는 놈은 적분인자를 곱해서 어떻게든 적분 가능한 꼴로 몰아넣는 게 전부였다. [수학] 1계 미분방정식 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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근데 회로가 조금만 복잡해져도 손이 박살난다.
여기서 한 가지 사실이 결정적인 힌트가 된다.
선형 회로에 사인파 입력을 넣으면, 정상상태에서 출력도 같은 주파수의 사인파다.
저항·인덕터·커패시터 어떻게 조합해도, 주파수는 절대 안 바뀐다. (진폭과 위상만 바뀐다.)
그러면 굳이 시간 함수 \( v(t) \) 전체를 들고 다닐 필요가 있을까?
진폭 \( A \)와 위상 \( \phi \), 두 개만 추적하면 되지 않나?
페이저는 정확히 이 발상에서 출발한다.
페이저의 정의 — 회전하는 화살표
오일러 공식을 다시 꺼낸다.
\( \displaystyle e^{j\theta} = \cos\theta + j \sin\theta \)
(식 2 - 오일러 공식)
오일러 공식이 익숙하지 않다면 이 글을 먼저 읽고 오자.
[수학] 오일러의 공식과 항등식 -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등식
얼마 전 복소수 관련 포스팅을 작성하며, 복소수를 지수 형식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언급했다. [수학] 복소수에 관하여 - 허수를 왜 배워?고등수학을 처음 접하며 허수와 복소수를 배운 기억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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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식의 양변에 \( A \)를 곱하고 \( \theta \)를 \( \omega t + \phi \)로 치환하면 이렇게 된다.
\( \displaystyle \begin{aligned} A\, e^{j(\omega t + \phi)} &= A\cos(\omega t + \phi) \\[4pt] &\quad + j\, A\sin(\omega t + \phi) \end{aligned} \)
(식 3 - 복소지수와 사인파의 관계)
여기서 실수부만 보면 우리가 원하던 사인파다.
\( \displaystyle v(t) = A\cos(\omega t + \phi) = \mathrm{Re}\!\left\{ A\, e^{j(\omega t + \phi)} \right\} \)
(식 4 - 사인파를 복소지수의 실수부로 표현)
식 4 우변을 살짝 분리해보자.
\( \displaystyle A\, e^{j(\omega t + \phi)} = A\, e^{j\phi} \cdot e^{j\omega t} \)
(식 5 - 페이저와 회전인자의 분리)
이게 페이저의 핵심 트릭이다.
시간이랑 무관한 부분 \( A\, e^{j\phi} \) 와 시간만의 함수 \( e^{j\omega t} \) 가 깔끔하게 분리됐다.
여기서 시간 무관 부분이 바로 페이저다.
\( \displaystyle \mathbf{V} = A\, e^{j\phi} = A \angle \phi \)
(식 6 - 페이저의 정의)
굵은 글씨로 쓰는 \( \mathbf{V} \)는 시간 함수가 아닌 복소수다.
크기 \( A \), 각도 \( \phi \) 두 정보가 들어 있는 한 점.
이걸 복소평면에 그리면 길이 \( A \), 방향 \( \phi \)인 화살표가 된다.

왼쪽 그림에서 빨간 화살표가 \( \mathbf{V} \)다.
여기에 \( e^{j\omega t} \)를 곱하면 화살표가 반시계 방향으로 \( \omega \)의 각속도로 빙글빙글 돈다.
그 회전하는 화살표의 실수부(x좌표) 를 시간축에 늘어놓으면 오른쪽 그림처럼 사인파가 된다.
같은 사인파를 두 가지 방식으로 본 것뿐이다.
- 시간 함수: \( v(t) = A\cos(\omega t + \phi) \)
- 페이저: \( \mathbf{V} = A \angle \phi \)
같은 사인파에 대해 둘은 1:1 대응한다.
페이저 표기법으로 쓰면 한 줄이 끝이다.
페이저로 바꾸면 미분이 곱셈이 된다
여기서부터가 페이저의 진짜 위력이다.
\( v(t) = A\cos(\omega t + \phi) \)를 시간으로 미분하면 어떻게 될까?
\( \displaystyle \begin{aligned} \frac{dv}{dt} &= -A\,\omega \sin(\omega t + \phi) \\[4pt] &= A\,\omega \cos\!\left(\omega t + \phi + \tfrac{\pi}{2}\right) \end{aligned} \)
(식 7 - 사인파의 미분)
진폭이 \( \omega \)배 되고, 위상이 \( \pi/2 \)만큼 앞서갔다.
이걸 페이저로 보면 어떻게 될까?
미분된 사인파의 페이저는 \( A\,\omega \angle (\phi + \pi/2) \)다.
여기서 \( \angle \pi/2 \)는 \( e^{j\pi/2} = j \)와 같으므로 결국 아래와 같이 정리된다.
\( \displaystyle \frac{d}{dt} \;\longleftrightarrow\; j\omega \)
(식 8 - 미분 ↔ \( j\omega \) 곱셈)
시간 미분이 \( j\omega \)를 곱하는 연산으로 바뀌었다.
이게 페이저가 미분방정식 풀이에서 폭탄급인 이유다.
같은 논리로 적분은 \( 1/(j\omega) \)를 곱하는 것과 같다.
\( \displaystyle \int (\,\cdot\,)\, dt \;\longleftrightarrow\; \frac{1}{j\omega} \)
(식 9 - 적분 ↔ \( 1/(j\omega) \) 곱셈)
이제 식 1의 RLC 미분방정식을 페이저로 옮겨보자.
\( v(t) \to \mathbf{V} \), \( i(t) \to \mathbf{I} \)로 치환하고, 미분은 \( j\omega \), 적분은 \( 1/(j\omega) \)로 바꾸면 끝이다.
\( \displaystyle \begin{aligned} &j\omega L\,\mathbf{I} + R\,\mathbf{I} + \frac{1}{j\omega C}\,\mathbf{I} \\[4pt] &\qquad\qquad = \mathbf{V} \end{aligned} \)
(식 10 - 페이저 영역으로 변환된 RLC 회로 방정식)
미분방정식이 단순 일차방정식으로 변했다.
이게 마법이라고 하는 이유다.
페이저로 사인파 더하기 — 화살표 덧셈
같은 주파수의 사인파 둘을 더하는 작업을 시간축에서 직접 하려면, 덧셈 정리부터 꺼내야 한다.
근데 페이저로는?
그냥 복소수 두 개 더하면 된다.

- 왼쪽 : 복소평면에서 화살표 두 개를 머리-꼬리로 이어붙이면 그 결과가 합 페이저.
- 오른쪽 : 시간축에서 직접 더해도 같은 결과의 사인파가 나오긴 하는데, 진폭과 위상을 손으로 뽑아내려면 노가다.
같은 일을, 페이저는 좌표 덧셈으로, 시간축은 삼각함수 공식으로 푼다.
뭐가 더 편한지는 굳이 비교할 필요도 없다.
이 차이가 회로가 복잡해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진다.
페이저 vs 시간 함수
핵심을 표로 정리하면 이렇다.
| 구분 | 시간 함수 \( v(t) \) | 페이저 \( \mathbf{V} \) |
| 표현 | \( A\cos(\omega t + \phi) \) | \( A\, e^{j\phi} = A \angle \phi \) |
| 정체 | 시간에 따라 출렁이는 함수 | 시간 무관한 복소수 (화살표) |
| 미분 | \( \dfrac{dv}{dt} \) — 새 사인파 계산 | \( j\omega \)배 — 곱셈 한 번 |
| 적분 | \( \int v\, dt \) — 적분 계산 | \( 1/(j\omega) \)배 — 나눗셈 한 번 |
| 덧셈 | 삼각함수 덧셈 정리 | 복소수 덧셈 |
| 곱셈 (스칼라) | 진폭 × 스칼라 | 페이저 × 스칼라 |
| 주파수 정보 | 식 안에 \( \omega \) 명시 | 별도 보관 (회로 전체 1개) |
(표 1 - 시간 함수 vs 페이저 표현 비교)
마지막 줄이 중요하다.
페이저 표현에는 \( \omega \)가 없다.
회로 전체에서 주파수는 단 하나뿐이라(같은 사인파니까), 굳이 모든 페이저에 매번 \( \omega \)를 적을 필요가 없는 거다.
진폭과 위상만 추적하고, \( \omega \)는 회로 머리 한쪽에 메모해두면 끝.
주의할 점 — 페이저는 만능이 아니다
페이저가 위력적인 만큼, 사용 조건이 명확하다.
다음 세 가지 조건이 다 만족돼야 한다.
첫째, 정상상태(steady-state) 응답만 다룬다.
전원이 켜진 직후의 과도응답(transient)은 못 본다.
페이저는 회로가 충분히 시간이 지나서 안정된 사인파 응답으로 정착한 상태를 가정한다.
과도응답까지 보고 싶으면 라플라스 변환으로 가야 한다.
둘째, 단일 주파수의 사인파만 다룬다.
회로에 60Hz와 1kHz가 동시에 들어있으면 페이저로 한 번에 못 푼다.
각 주파수에 대해 따로 페이저 해석을 해서 시간 영역에서 합산해야 한다.
셋째, 선형 회로에서만 성립한다.
다이오드·트랜지스터 등 비선형 소자가 끼면 사인파가 그대로 보존되지 않는다.
이 경우엔 소신호 해석으로 선형화한 다음에야 페이저를 쓸 수 있다.
이 세 조건만 머리에 두면, 페이저는 AC 회로 해석에서 거의 만능이다.
마무리
페이저의 핵심을 한 번 더.
- 사인파 \( A\cos(\omega t + \phi) \)를 복소수 \( \mathbf{V} = A\, e^{j\phi} \)로 바꿔치기
- 미분은 \( j\omega \) 곱셈, 적분은 \( 1/(j\omega) \) 곱셈으로 변환
- 미분방정식이 일차방정식으로 단순화
이 한 번의 도약으로, 다음 글에서 다룰 임피던스(Impedance) 라는 개념이 정의 가능해진다.
R·L·C 각각이 페이저 영역에서 어떻게 보이는지, 그리고 그게 왜 옴의 법칙처럼 \( \mathbf{V} = \mathbf{Z}\,\mathbf{I} \) 형태로 깔끔하게 정리되는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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